이랜드나눔이야기 | 국경을 넘어 피어나는 작은 봄 | 2025-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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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돕돕_탈북2.jpg 돕돕-탈북.png | |
국경을 넘어 피어나는 작은 봄 탈북 청소년, 낯선 땅에서 다시 서기까지
낯선 교실에 선 아이들 ![]()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약 3만 3천 명이며, 그 중 15 % 정도가 청소년입니다. 매년 200명 안팎의 탈북 청소년이 새로 입국하지만, 열 명 중 일곱은 제3국에서 태어나 국적조차 모호한 상태로 국경을 여러 차례 넘어야만 교실 문턱에 설 수 있습니다.
입국 초기부터 ‘보호자 없는 생활’이 일상으로 자리 잡습니다. 새로운 언어와 억양을 익히기도 전에 “탈북자 티 내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다시 묻게 됩니다.
흔들리는 뿌리, 깊어지는 상처언어와 학습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집니다. 초,중학교 학업 중단률은 1 % 남짓이지만, 고등학교로 넘어가면 4.8 %까지 치솟습니다.
기초가 부족해도 사교육은 꿈같은 이야기이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다 생활비가 부족해 일을 구하러 나가는 날이 반복됩니다.
“나는 북한도 남한도 아닌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는 말을 털어놓습니다.
손을 내밀 때 시작되는 변화이랜드재단은 '돕돕프로젝트'를 통해 위기 상황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을 지원하였습니다.
‘돕돕프로젝트’는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의미로, 가정 밖 청소년, 다문화 청소년, 자립 준비 청년 등 사회의 관심 밖에 놓인 다음 세대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전문 단체를 돕는 협력 파트너 사업입니다.
A군은 중국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홀로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을 피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A군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멘토링을 통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중국에 남겨진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졌을 때, 멘토와 공동체가 장례를 도우며 A군은 처음으로 ‘가족 같은 어른들’과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그 일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지금은 사회복지와 중국어를 복수전공하며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을 돕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반복된 따돌림 끝에 중국으로 떠났던 B군은 불법 아르바이트 때문에 구치소 생활을 겪었습니다. 불법인지 몰랐고, B군을 위해 멘토해주는 어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가운 독방에서도 멘토의 편지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출소 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 역시 멘토가 기다리고 있던 예배당이었습니다.
“누군가 끝까지 나를 기다렸다”는 확신은 삶을 다시 설계할 힘이 되었습니다. B군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생계비를 지원하였습니다. 여섯 달간 준비 끝에 대학에 편입하였고, 기숙사에 살며 아르바이트하면서 새 출발을 하였습니다.
C양은 제3국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 한국에 왔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벽 앞에서 주저하던 그는 생계비를 지원받으며 멘토와 함께 신앙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섬김”이라는 삶의 방향을 찾은 뒤, 기독교 상담사가 되어 또 다른 탈북 청소년을 돕겠다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멘티들에게 올바른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멘토, 멘토와의 신뢰관계 형성 및 다시 일어설 때 까지의 생계비 지원 이것은 멘티들이 다시 일어설 때 까지 따뜻한 동행이 되어주었습니다.
함께 만들어 갈 내일탈북 청소년에게는 멈춰 버린 과거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내일이 공존합니다.
오늘 우리가 내미는 작은 손길이, 또 한 명의 청소년에게 “여기가 너의 집”이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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