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옥상에 피어난 작은 쉼터, 이주노동자의 삶을 돌보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취약계층이 존재한다. 취약계층 문제에 관심을 갖고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진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취약계층 지원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위기가정, 가정밖청소년, 자립준비청년 등 일명 '신(新)사각지대' 취약계층이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
이에 민간 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랜드재단,이랜드복지재단은 '신(新)사각지대' 취약계층 발굴과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이랜드재단,이랜드복지재단과의 연중 기획을 통해 '신(新)사각지대' 취약계층의 실태와 문제점, '신(新)사각지대' 취약계층 발굴과 지원을 위한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 마석 가구공단. 가구 공장들이 밀집한 이곳 한 켠, 분진과 유해 공기가 가득한 공장 옥상에 자리한 작은 교회가 있다. 제대로 된 간판도 갖추지 못한 공간. 그러나 이곳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이자 ‘쉼터’, 그리고 ‘희망’이다. 황호상 선교사와 그의 가족은 이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돌보고 있다. 병원 동행, 출입국 문제 해결, 산재 상담, 임금 체납 문제 해결, 중독 문제 치료, 그리고 하루 끝의 늦은 밤 모임까지. 이름 없는 이웃들의 곁에서 멈추지 않고 손을 내민 사람, 황 선교사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자리’가 있었다.
▲황호상 선교사. 이랜드재단 마석 가구공단에서 시작된 돌봄의 삶 “해외 선교를 꿈꾸며 준비했지만, 어느 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선교는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그곳이 바로 선교지라고요. 그 깨달음이 저를 한국 안에 있는 이주민들에게로 이끌었습니다.” 2003년, 황 선교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한국 안에서의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인들과 동고동락하는 쉼터를 섬기는 교회에서 사역하며 이들의 필요를 직접 목격했다. 이후 계속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사역을 지속하던 그는 2010년부터 희년국제선교교회에 속해 구로와 마석 가구단지 두 곳의 사역을 맡게 되었다. 서울 구로동 가리봉에서 시작해 마석 가구공단으로 이어진 그의 사역은 자연스레 가장 낮고 보이지 않는 자리로 향했다. 황 선교사의 교회는 말 그대로 '삶과 맞닿아 있는 교회'다. 병원 동행, 통역, 법률 상담, 임금 체불 문제 해결, 생활 상담까지 모든 실질적인 도움을 책임진다. 밤늦게도 긴급한 연락이 오기 때문에, 그는 늘 전화기를 곁에 두고 24시간 대기 상태로 지낸다. 현재 30명가량의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가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기도와 공부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 10시, 11시에 근로를 마무리한 후에도 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석가구단지는 가족을 부양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고, 갈 곳 없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일하러 오는 곳입니다. 일하는 곳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서 근로자들 대부분이 분진이 날리는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모두가 꺼리는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일해야 하고, 그들 곁에도 누군가는 있어 줘야죠." 황 선교사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다문화가정에 대한 돌봄도 함께하고 있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이들을 초대해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한다 또 공장 안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근교로 나가 모임을 열기도 한다. 일주일 내내 가구단지 안에 갇혀 지내는 이들에게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마석가구단지 희년국제선교교회 공동체 모습. 이랜드재단 건강 악화 속에서도 이어진 돌봄의 시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달려오다 보니 황 선교사의 몸은 무리를 피할 수 없었다. 공장 옥상 교회는 환기 시설 없이 분진과 화학 물질에 노출되어 있어 호흡기 질환과 알레르기 증세가 일상이 됐고, 무릎 관절은 무리한 이동과 과로로 망가져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최근엔 좁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그런데도 그는 사역을 멈추지 않는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병원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고, 상담을 하려고 찾아올 테니까요. 제가 하루를 쉬면,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질 수 있잖아요.” 가족 모두가 감당해 온 헌신과 고된 일상 황 선교사의 사역은 가족 전체의 헌신으로 가능했다. 특히 아내 이나연 사모는 자폐 증세가 있는 둘째 아이를 돌보며 쉽지 않은 일상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소리를 지르고 갑작스레 행동하는 아이를 보호하는 동시에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들도 함께 돌보는 이나연 사모의 헌신은 황 선교사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첫째 딸은 양쪽 무릎 슬개골 탈구 진단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 모두가 신체적, 정서적으로 지쳐가던 가운데, 이나연 사모 역시 건강 이상으로 가슴 혹 진단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늘 제가 섬겨야 할 이들이 먼저였죠. 하지만 이제는 가족도 돌아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황호상 선교사 가족 히어로 포레스트 여행. 이랜드재단 처음이자 유일했던 가족 여행: 히어로 포레스트가 만든 소중한 기억
황 선교사에게 ‘가족여행’은 먼 이야기였다. 21년 동안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없이 하루하루를 예배와 상담, 돌봄으로 채워왔다. 명절에도 교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런 황 선교사의 상황을 파악한 이랜드재단의 ‘히어로 포레스트’ 프로젝트가 황 선교사 가족을 제주도로 초대했다. 비행기 탑승부터 낯선 숙소 생활까지 둘째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조심스럽게 시도했고, 오랜만에 함께 웃었다. 딸은 “유일한 아쉬움이 기간이 짧은 것”이라고 말할 만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에 만족스러워했고, 황 선교사 부부는 “이 기억만으로 다시 한번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고 고백했다. “장애가 있는 아들로 인해 집에서는 발소리, 목소리마저 눈치보며 살며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게 꿈만 같았습니다. 그동안 외국인 나그네들과 함께 해 온 걸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은 저도 누군가가 주목하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교회 생일축하 모임. 이랜드재단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향한 멈추지 않는 걸음 황 선교사의 하루는 여전히 새벽 5시 기도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공단 근로자들과 출근 전 모임과 상담을 하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사역은 단순히 외국인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낮은 곳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삶’ 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작고 가난하지만, 서로 돌보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언젠가 이들이 모국으로 돌아갔을 때, 건강한 신앙인으로 다시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면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에요.” 이랜드재단의 ‘히어로 포레스트’는 바로 이런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가장 강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 황호상 선교사의 삶은 그런 사랑이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사회가 더욱더 나은 사회, 따뜻한 사회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숨은 공로자를 추천해 주십시오. ‘히어로 포레스트’ 추천 이메일 elandfoundati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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