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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재단 “오늘 어땠니” 묻는 한 사람, 7R청소년공감센터가 지키는 ‘안녕’의 무게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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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땠니” 묻는 한 사람, 7R청소년공감센터가 지키는 ‘안녕’의 무게

이랜드재단과 함께하는 ‘사마리탄’ – 7R청소년공감센터 박영미 센터장

 

 

▲7R청소년공감센터 박영미 센터장. 이랜드재단

▲7R청소년공감센터 박영미 센터장. 이랜드재단

 

강남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안정적인 수입과 경력을 쌓아가던 한 여성이 있었다. 

소위 ‘남부러울 것 없는 길’을 걷던 그는 어느 날, 경기도 광주의 낮은 골목길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7R청소년공감센터 박영미 센터장의 이야기다.

 

그 인생의 전환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중학생 아들이 집으로 데려온 친구 한 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정폭력으로 코뼈가 부러진 채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돌던 아이였다. 

 

박 센터장은 아이의 상처를 닦아주고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내주었다. 

동시에 아이의 아버지와 끈질기게 소통하며 아이가 다시 거리로 밀려나지 않도록 관계의 통로를 놓았다. 

그날 이후 그의 집은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고, 7R청소년공감센터는 그렇게 태동했다.

 

 

“이모가 우리 얘기를 들어준대” 온기가 만든 관계의 확장


처음에는 단 한 명의 아이였다. 

그러나 그 집에서 느낀 안전함과 온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거기 가면 이모가 밥도 해주고, 우리 얘기도 들어준다”는 소문은 외로운 길 위의 아이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다정한 약속과 같았다. 

한 아이가 또 다른 친구의 손을 잡고 찾아오기를 반복하며, 어느덧 스물다섯 명의 아이가 박 센터장의 울타리 안으로 모여들었다. 

 

“저는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무조건 품었어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권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아이들이 계속해서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니, 식구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박 센터장이 만난 아이들은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가정폭력과 방임 속에 자란 아이들, 사실상 보호자가 부재한 아이들, 학교와 갈등을 겪는 이들부터 다문화·이주 배경의 아이들까지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공통점은 분명했다. 

바로 ‘돌봄의 공백’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서두른 훈계보다 먼저, 자신을 믿고 지켜줄 ‘안전한 어른’이 절실했다. 

박 센터장은 결국 사비를 털어 공간을 마련했다. 

화려한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아이들이 언제든 돌아와 밥을 나누고 삶의 기준을 함께 세워갈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처벌 대신 회복을, 학교와 가정 사이의 가교

현재 7R청소년공감센터의 역할은 찾아오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역 학교와 협력해 징계를 받았거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곳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회복이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낙인찍는 대신,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면의 상처와 불안을 함께 살핀다. 

박 센터장은 이를 “아이들이 자기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센터는 학교와 가정 사이의 완충지대가 되어 부모 상담과 장기 멘토링을 병행하며, 아이들이 다시 사회적 관계 안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 학교와 특별교육 프로그램 MOU를 체결하고 있는 박영미 센터장(오른쪽). 이랜드재단

▲지역 학교와 특별교육 프로그램 MOU를 체결하고 있는 박영미 센터장(오른쪽). 이랜드재단

 

 

보호자가 가르쳐주지 못한 ‘삶의 디테일’을 채우다


성인이 된 뒤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센터를 찾는다. 

박 센터장은 자신을 “심부름센터 소장”이라며 웃어 보이지만, 그의 역할은 단순한 조력을 넘어선다. 

취업 현장에 동행하고, 비어 있는 냉장고를 채우며,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함께 수습한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무너지지 않을 ‘생활의 기본기’를 갖추는 일이다.

 

“친구 돌잔치 축의금으로 100만 원을 내고 온 아이가 있었어요. 

얼마가 적당한지 물어볼 어른이 곁에 없었던 거죠. 

상갓집에 슬리퍼를 신고 가면 왜 실례인지, 근로계약서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이런 작지만, 중요한 디테일을 알려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보호자가 가르쳐주지 못한 삶의 예절과 상식의 부재는 아이들을 사회에서 다시금 소외시킨다. 

박 센터장은 낙인찍기보다 연습하게 하고, 꾸짖기보다 원리를 설명하는 ‘따뜻한 잔소리’를 통해 아이들의 사회적 근육을 키워준다.

 

 

▲식사 지원, 영어 캠프 등 다양한 형태로 청소년들을 케어하는 모습. 이랜드재단

▲식사 지원, 영어 캠프 등 다양한 형태로 청소년들을 케어하는 모습. 이랜드재단

 

 

3대를 아우르는 치유, 아픔의 고리를 끊어내다


박 센터장은 현장에서 한 가지 확신에 도달했다. 

아이만 붙잡아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도 부모의 폭언과 결핍이 그대로라면 아이는 다시 거리로 튕겨 나간다. 

그래서 그는 부모를 만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상처 입은 어른들은 도움의 손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한다. 

박 센터장은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가 “3대를 다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 또한 상처 속에서 자란 피해자일 수 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대를 이어 내려오는 아픔의 고리를 끊어낼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전시되지 않는 진심, 이랜드재단과 함께 걷는 길

박 센터장은 아이들을 사역의 ‘성과’로 전시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한다. 

후원을 끌어내기 위해 아이들의 상처를 가공하는 행위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조차 아이들에게 평생의 꼬리표가 될까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아이들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내는 ‘안녕’ 그 자체다.

 

정부 보조금 없이 홀로 월세를 감당하며 버텨온 고단한 길에서, 이랜드재단의 ‘돕돕 프로젝트’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현장의 철학을 존중하며 사역자가 지치지 않도록 기반을 지원하는 방식은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정신의 실천이었다. 

박 센터장은 이제 한 달 1만 원 후원자 100명을 모으려 한다. 

돈의 액수보다, 아이들의 곁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묻는 안부, “오늘 어땠니”


오늘도 박영미 센터장은 거리에서, 센터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집 문 앞에서 안부를 묻는다. 

사람은 한 번의 실수로 규정되지 않으며, 삶은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발걸음을 움직인다. 

“자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눈에 보여서 멈출 수 없다”는 그는 누군가를 돕는 삶이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방치된 관계의 밖에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안녕’할 수 있는 세상. 

그 변화는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단단한 관계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7R청소년공감센터에는 오늘도 아이들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며 “오늘 어땠니”라고 묻는 따뜻한 한 사람이 서 있다. 

 

 

※사마리탄은 이랜드재단의 ‘돕는 자를 돕는다’ 핵심 파트너로서, 사각지대 미래세대를 위해 현장에서 진정성 있게 헌신하는 전문 활동가를 뜻합니다.

 

출처 : 한국NGO신문(https://www.ngo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