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재단 | 국적과 피부색을 넘어선 따뜻한 품, 아프리카 이주 아동의 울타리가 되다 | 2026-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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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피부색을 넘어선 따뜻한 품, 아프리카 이주 아동의 울타리가 되다이랜드재단과 함께하는 ‘사마리탄’ – 아프리카 이주민 아동의 보금자리 ‘조이하우스’ 이인자 센터장 ▲조이하우스 이인자 센터장. 이랜드재단 경기도 파주의 한 외진 동네, 8년 동안 버려져 있던 폐공장 터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이인자 센터장의 일주일은 평일과 주말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평일에는 그가 이끄는 비영리법인 아동 돌봄터 ‘조이하우스’가 일터로 나간 부모들을 대신해 아프리카 이주민 아이들을 품어 안는다. 반면 주말이 되면, 남편 장일석 목사와 함께 섬기는 ‘디자인교회’의 예배당으로 쓰이는 낡은 폐공장에 고된 3D 업종에서 일주일 내내 땀 흘린 이주민 노동자와 싱글맘들이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찾아와 삶의 위안을 얻는다. 평일에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세상 어떤 곳보다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주말에는 타국에서 차별과 노동에 지친 어른들이 눈물을 쏟아내며 기댈 수 있는 곳. 이 두 공간을 넘나들며 이방인들의 엄마이자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이 센터장은 자신의 활동을 “그저 발길이 닿는 곳, 돌봄이 필요한 생명에 응답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시선, 캄캄한 문간방의 아이들에게 닿다 이 센터장의 나눔은 지역의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하며 시작되었다. 과거 기지촌이었던 용주골 주변, 한때 그곳에서 생계를 잇다 갈 곳을 잃었거나 저렴한 집값을 찾아 남겨진 독거노인 등 사회가 외면한 이들을 찾아가 반찬을 나누며 소외된 이웃과 연대하는 법을 체득했다. 그의 시선이 ‘이주민 아동’을 향하게 된 것은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반찬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만삭의 몸을 이끌고 다 해진 고무 슬리퍼를 신은 채 둑길을 걸어가는 아프리카 여성을 마주쳤다. “저도 타지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어봤기에, 그 친구가 얼마나 고향 엄마의 보살핌과 따뜻한 음식이 그리울지 뼈저리게 느껴졌어요. 조심스레 다가가 ‘너는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목요일에 오면 빵을 나누어 주겠다’고 위로를 건넸죠. 제 말을 들은 그 여성은 커다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요. 타국에서 겪은 서러움과 외로움이 그 작은 환대에 속절없이 터져 나온 것이었죠.” 그 작은 환대가 마중물이 되어 이주민 임산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센터장은 이주민 가정, 특히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당장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야 했던 엄마들은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며칠 전 출산한 지인의 집에 아이들을 부탁하고 출근했지만, 안방에서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여력이 없던 산모는 맡겨진 아이들까지 챙길 수 없었다. 결국 채광조차 되지 않는 좁고 캄캄한 거실 바닥에 세 명의 어린아이만 덩그러니 널브러져 남겨진 셈이었다. “한겨울이었는데, 아기들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신었던 신발과 자그마한 가방조차 벗지 못한 채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되어 빈 우유통을 굴리며 차가운 바닥을 뒹굴고 있었어요. 당장 먹고살기 위해 핏덩이 같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일터로 향해야만 했던 엄마들의 절박함, 그리고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이토록 여린 생명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든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죠.” ▲이인자 센터장과 조이하우스 아이들. 이랜드재단 월세 28만 원짜리 낡은 빌라에서 시작된 기적 그길로 이 센터장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짜리 모텔 뒤 낡은 빌라 2층을 얻어 아프리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해야 할 시기에 옥수숫가루를 분유에 타 먹이거나 바닥이 아닌 무릎 위에서 기저귀를 가는 등 낯선 아프리카식 양육 방식과 마주하며 크고 작은 문화적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법을 배워 나갔다. 손수 한국식 이유식을 끓여 먹이고, 돈이 없어 동네에 버려진 재활용 고무통을 주워 와 닦아서 아기들을 씻겼다. 옥상 방수 페인트 바닥 위에서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자전거를 타게 했던 헌신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5명, 10명으로 늘어났고, 아이들이 자라나며 비영리법인 조이하우스는 이주민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 지금의 공간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현장의 진심을 지켜주는 든든한 연대, 이랜드재단 ‘돕돕 프로젝트’ 아이들이 늘어나고 공간이 커졌지만, 조이하우스의 현실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매달 감당해야 하는 월세, 방음이 되지 않아 겪는 주변의 민원, 그리고 쉼터 옆 폐공장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위기까지 겹치며 수많은 고비를 겪어야 했다. 가장 막막하고 외로웠던 순간, 현장의 진정성을 알아본 곳이 바로 이랜드재단이었다. 이랜드재단은 ‘돕는 자를 돕는다(돕돕 프로젝트)’라는 가치 아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인자 센터장과 조이하우스에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단순한 일회성 물품 지원을 넘어, 긴급한 위기 상황에 처한 이주민 가정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현장 활동가가 지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 센터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이라고 생각할 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자원을 연계해 주는 협력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고백한다. ▲조이하우스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는 모습. 이랜드재단 “우리 아이들이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나기를” 이 센터장의 앞으로의 꿈은 소박하지만 단단하다. 예배당으로 쓰이는 폐공장에 방음 시설을 더 갖춰 타국 생활에 지친 이주민 어른들이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을 나누게 하는 것. 그리고 여유 공간에 다채로운 색을 칠한 컨테이너를 놓아 이주민들이 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이발소와 미용실, 식당을 만들어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덜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넓히는 것이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한국어와 부모님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귀중한 글로벌 인재들이에요. 이 아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나도록 돕는 것이 저에게 남은 역할입니다.” 오늘도 조이하우스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떠밀려 갈 곳 잃은 이방인과 그 아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곁을 내어주는 이인자 센터장 부부의 헌신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품어야 할 포용과 연대의 의미를 묵직하게 묻고 있다. *사마리탄: 이랜드재단의 ‘돕는 자를 돕는다’ 핵심 파트너로서, 사각지대 미래세대를 위해 현장에서 진정성 있게 헌신하는 전문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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