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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재단 아픈 고래가 숨 쉴 수 있도록, 기꺼이 수면 위로 밀어 올리다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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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고래가 숨 쉴 수 있도록, 기꺼이 수면 위로 밀어 올리다

이랜드재단과 함께하는 ‘사마리탄’ –고립 위기 청년들의 베이스캠프,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이랜드재단 제공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이랜드재단 제공

 

1997년 IMF 외환위기는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부부의 일상에도 깊은 흉터를 남겼다. 사업 실패 후 남편은 서울역 등지에서 무료 급식에 의지해 수개월간 노숙 생활을 했고,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김 센터장은 남편과 떨어져 친정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이후 부부가 생계를 위해 택한 곳은 인천 부평의 빈민가였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던 철거 위기의 낡은 동네에서 신문 보급소를 차렸다. 매일 새벽 3시면 배달을 시작해야 해 밤새 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었던 그 고단한 삶의 터전이 훗날 은둔·고립 청년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낼 거대한 씨앗이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새벽 3시의 불청객, 14살 소년이 일깨워준 사역의 방향성

어느 고요한 새벽, 열려 있는 보급소 문을 넘어와 냉장고를 뒤지던 14살 소년이 남편에게 들켰다. 남편은 호통을 치는 대신, 배가 고파 보이는 작은 체구의 소년에게 따뜻한 라면을 끓여주었다. 집을 나간 엄마, 알코올 중독인 아빠, 발길이 끊긴 학교. 소년의 사연을 마주한 순간, 김 센터장은 사회적 위기가 가장 먼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한다는 뼈아픈 현실을 실감했다.

 

“이 아이를 이대로 내보내면 대체 어디로 갈까.” 부부는 소년을 보급소에 매일 놀러 오게 했고, 함께 신문을 돌리며 거두었다. 이후 서울로 보급소를 옮겨야 했을 때, 소년은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며 매달렸다.

 

부부는 이 소년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소년 세 명을 거두어 온전한 가족으로 품었다. 낡은 보급소를 빌려 부부와 어린 두 딸, 그리고 세 명의 청소년까지 총 7명이 부대껴야 하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카센터에 보내 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진심을 다했다. 그때의 14살 소년은 40대의 어엿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김 센터장 부부와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조건 없이 내어준 곁이 한 사람의 자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한 이 경험은 김 센터장 부부의 시선을 ‘위기 청년’으로 향하게 만든 문제의식이 되었다.

 

밥집에서 발견한 청년들의 웅크린 빈곤, 방 안에 숨어버린 세대 

이후 남편 김현일 대표는 2009년부터 노숙인과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바하밥집’을 열어 묵묵히 밥을 지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무료 급식소 줄에 유독 2030 청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밥값을 아끼려는 고시생들인 줄 알았으나, 대화를 나눠 보니 그들의 내면에는 거듭된 실패와 비교 경쟁에 지친 깊은 무력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히 일자리만 연결해 주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오산이었다. 남편이 사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자, 김 센터장은 청년들의 회복을 전담하기 위해 다니고 있던 무역회사에서 퇴직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이후 퇴직금을 털어 미국 시애틀의 ‘리커버리 카페’ 등을 탐방하며 현장의 해답을 찾아 나섰다.

 

미국 탐방에서 김 센터장이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한국 청년들이 겪는 ‘고립의 특수성’이었다. 외국의 방황하는 청년들이 주로 마약이나 노숙으로 거리에 노출되어 있다면, 한국의 위기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압박에 짓눌려 ‘방 안’으로 숨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취업 문을 넘지 못했다는 자괴감, 학교 폭력이나 가정 해체로 인한 트라우마가 이들을 철저한 은둔으로 내몰고 있었다. 

 

간판 없는 아지트, 단절된 고래들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리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9년 문을 연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외부에는 간판이 없다. 세상의 시선과 잣대가 두려워 방 안에 숨어버린 청년들에게 평가받지 않는 ‘우리만의 안전한 공간(아지트)’이 필요하다는 배려에서다.

 

김 센터장은 은둔 청년들의 고립 기간을 단순히 방 안에 갇혀 있던 시간만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1년 동안 은둔했다고 찾아온 청년과 상담해 보면, 10대 시절의 학교 폭력이나 가정 해체로 인해 이미 10년 전부터 마음이 고립되어 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몸만 20대일 뿐, 고통받던 그 시절에 멈춰 있는 거죠. 고립된 시간만큼 회복의 시간도 길 수밖에 없습니다.”

 

센터의 이름에는 이들을 향한 연대의 철학이 묻어 있다. 아프고 다친 고래가 숨을 쉬지 못해 가라앉을 때, 동료 고래들이 몸을 띄워 수면 위로 밀어 올려 숨을 쉬게 돕는 것처럼, 방 안에 웅크린 청년 고래들의 호흡을 돕는 동료가 되겠다는 뜻이다.

 

▲은둔고립 청년들이 모이는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내부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은둔고립 청년들이 모이는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내부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야구장과 주방에서 배우는 ‘일상의 감각’

은둔·고립 청년 대다수는 밤낮이 바뀐 채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신체적, 정서적, 관계적 건강이 모두 무너져 있다. 따라서 센터의 회복 프로그램은 거창한 상담이나 예술 치료 이전에 ‘햇볕 쬐기’와 ‘밥해 먹기’ 같은 가장 일상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을 깨우는 데 집중한다. 대표적인 코어 프로그램이 ‘야구’와 ‘쿠킹 런치(Cooking Lunch)’다. 

 

“야구는 홈에서 출발해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경기입니다. 청년들이 세상에 나갔다가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돌아올 ‘홈(Home)’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1루에서 아웃을 당해도 9회 말까지 기회가 있는 것처럼, 살아만 있다면 삶의 기회는 언제든 주어집니다. 캐치볼을 하며 타인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배려하는 법도 배우게 되죠.”

 

직접 장을 보고 함께 밥을 짓는 ‘쿠킹 런치’ 역시, 단절되었던 세상과 소통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필수 과정이다. 이렇게 일상의 루틴이 회복된 청년들은 이후 외부 기업과 협력해 취약계층에 전달할 도시락 120개를 직접 만들고 배달하는 일 경험을 하며, 자신의 노동이 타인을 돕는 가치로 변환되는 성취감을 맛본다.

 

▲푸른고래리커버리에서 진행하는 야구 프로그램 진행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푸른고래리커버리에서 진행하는 야구 프로그램 진행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궁극적인 자립은 곧 ‘공생(共生)’이다

김옥란 센터장이 가장 강조하는 캐치프레이즈는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은 곧 공생이다”라는 문장이다. 흔히 자립을 경제적 독립으로만 정의하지만, 실질적인 자립은 타인과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생’에 있다는 의미다.

 

이 철학은 실제로 회복된 청년이 또 다른 은둔 청년을 돕는 건강한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인기피와 강박증으로 센터에서 1년 넘게 공동생활을 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던 한 청년은, 이제 어엿한 사회복지사가 되어 센터의 스태프로 일하며 비영리 단체의 지속 가능성을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직접 장을 보고 함께 밥을 짓는 ‘쿠킹 런치’ 프로그램 진행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직접 장을 보고 함께 밥을 짓는 ‘쿠킹 런치’ 프로그램 진행 모습. 이랜드재단 제공


현장을 뛰게 하는 이랜드재단과의 동행, 그리고 남은 꿈

단단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랜드재단의 ‘돕돕 프로젝트’는 김옥란 센터장과 청년 모두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특히 이랜드재단이 외부 기업들과 협력해 생필품 박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천사박스’는 방 안에 숨어있던 청년들을 세상 밖으로 이끄는 소중한 명분이 된다.

 

“천사박스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단톡방에 올리면,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청년들조차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센터로 찾아옵니다. 누군가 자신을 잊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거죠. 이 작은 환대와 선물이 고립된 청년들을 밖으로 부르는 훌륭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랜드재단은 그 외에도 ‘돕돕프로젝트’를 통해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며 현장의 빈틈을 함께 메우는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고 있다. 

 

김옥란 센터장의 남은 비전은 재정난으로 잠시 멈추어야 했던 ‘공동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14살 소년을 가족으로 품었던 그 시절처럼, 안정적인 회복은 일상을 공유하며 가족이 되어주는 끈끈한 공동체 생활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는 심해로 가라앉으려는 청년들의 몸을 묵묵히 받쳐 올리며,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내일을 정직하게 빚어내고 있다. 

 

*사마리탄: 이랜드재단의 ‘돕는 자를 돕는다’ 핵심 파트너로서, 사각지대 미래세대를 위해 현장에서 진정성 있게 헌신하는 전문 활동가입니다.